중언부언의 날들

2014. 10. 16. 19:52














잘 지내고 있지? 설마 외로운 건 아닐 테고

옷깃만 스치는 날들이 지나가서 나는 이윽고 담배를 끊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치며 침묵이 깊었다

침묵이 불편해지는 관계는 오래 가기 힘든 법이다

번번이 먼저 열락하게 만든다며, 이번에도 졌다고 너는 칭얼거렸다

나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이 너를 찾아갔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 이름 붙였던 유배지는 텅 비어 있었다

내 기억의 못 갖춘마디 속에 꾹꾹 도돌이표를 찍어놓고

너는 또 어느 봄날에 미쳐 해배된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 그만두자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적어를 명시하지 못한 객기는 조금 불안했다

대신 하염없는 취생몽사의 어디쯤

옷깃만 스치는 생의 말엽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末葉, 그때는 정말 마지막 잎새처럼 악착같이 매달리지는 말자

다만 잘 지내지?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어주는 게

그나마 세상의 인연을 껴안는 방식이라는 것

설마 외로운 건 아니었으면 싶다 나는 또 담배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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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언부언의 날들,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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