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2014. 9. 8. 19:58
딱 한번만 숨쉬고 싶어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거야
고요한 평화는 또 다른 죽음이었어
구석진 곳에 차갑게 방치된 채
내가 나를 보지 못한 날들이 뿌옇게 쌓였어
더듬이를 잃은 시간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
자궁 속인지 무덤 속인지 모를 이 곳에서
나,
붉게 물들인 시간이 녹슬어 바닥까지 번졌어
한때 내 안에도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어
지금 하얀 포말 같은 언어들이 딱딱하게 굳어가
나를 깨우고 싶어
누군가의 손길에 세차게 흔들리고 싶어
나를 잠근 안전핀을 뽑고
내 안을 확인하고 싶어
나만을 태울 수 있는 불길을 만나
한순간의 뜨거움을 향해 확
나를 쏟어리고 싶어
딱 한 번만 숨 쉬고 싶어